[충청뉴스큐] 인천광역시는 23일 오후 2시 30분에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대강당에서 ‘인천의 3·1운동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제21회 인천역사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당시 항일독립운동의 동향을 파악하고 인천에서의 3·1만세운동의 여러 양상과 주요 인물들을 재조명하면서 특히, 인천 만국공원에서 있었던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13도 대표자회의의 역사적 의미를 시사편찬위원, 인천 연구자, 대학 교수, 관련 시민단체와 일반시민들이 함께 담론했다.
제1주제 ‘3·1운동과 국내외 동향’을 통해 3·1운동 발발의 국내외적 배경과 역할 및 그 의미를 고찰하고, 제2주제 ‘인천에서의 3·1운동과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사례를 통해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던 인천에서의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만국공원 13도 대표자 회합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어서 제3주제 ‘인천의 항일운동가 재조명’을 통해 3·1운동을 분기점으로 이후 인천에서 전개되었던 항일독립운동과 그 주역이었던 항일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자 했다. 3가지 주제 발표에 이어 4명의 연구자들이 토론에 참여한다.
일제의 국권침탈 이후 숨죽였던 민족운동은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항일운동으로 폭발했다. 서울에서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해외동포들도 각지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인천에서도 인천, 부평, 강화, 옹진 등 전 지역에서 수많은 군중이 독립만세시위운동에 동참했다.
인천은 개항 이래 일제 식민지 건설의 전초 기지였고 합병 후에도 이미 구축된 일본의 세력이 여타의 지방보다 공고했다에도 불구하고 인천에서의 만세 시위운동은 학생들의 동맹휴학, 상인들의 철시, 봉화 및 횃불 시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1919년 3·1운동과 그날의 만세 함성은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에서 시도되었던 한성임시정부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 회합을 통해 4월 23일 한성임시정부수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궁극적으로는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기반이 되었던 것에서 인천의 역사적 위상과 역할을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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